한 번 읽으면 절대로 잊지 않는 세계사 공부

 


왜?

중고교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국사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전교에서 유일한 만점을 받아 선생님의 관심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덕분에 잠시 사학과를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 현실의 벽에 접었었지. 

그리고 역사란 것에 무지해졌다. 나이가 들어가면 다큐멘터리, 역사가 재미있어진다는데, 아직 그 나이는 아닌가 보다. 그래도 가끔씩 드는 답답함을 풀어 보고 싶어서 손에 들었다. 


미국과 유럽이 마스크 거부 시위를 하는 이유

미국과 유럽에서 마스크에 반대해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식하진 않을텐데, 왜 저럴까?'란 의문을 가졌었다. 

(한무제) 이후 중국의 통치 이념은 주로 유교가 되었다. 유교이념에 따라 나라의 주권자는 황제이고 천명에 따라 백성을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중국과 주변 동아시아에 자리 잡게 되었다. 국토는 당연히 황제의 것이고, 황제의 토지에서 농사를 짓는 백성들이 국가에 세금을 내고 군대에 가야하는 것은 당연했다.

서양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서양에서 근대로의 혁명과정은 개인의 재산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왕이 함부로 하는 것에 대한 저항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 저항이 국민주권사상까지 흐르게 된다. 하지만 동양은 천명사상과 유교에 의해 왕은 다스림의 주체이고, 백성은 다스림의 대상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 글을 읽고 보니 이해가 된다. 나의 재산, 자유를 제한 당한다면 그것이 국가라도 저항하는 DNA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겨 성공한 사례도 있다. 동양과 서양을 가르는 기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왜 생각을 못했을까? 

지금 우리나라에도 이런 서구식 DNA가 급격하게 번지는 변화의 정점에 서 있음을 느끼고 있다. 세대 간의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커지고 있는 드 하다. 10년, 20년 후에는 어떻게 바뀐 사회에서 살고 있을까? 


문맹 퇴치의 힘

같은 시기 유럽에서는 성직자 외에는 성서를 직접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황제나 왕 중에도 문맹이 많았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들은 어릴 때부터 코란(이슬람교의 경전)을 의무적으로 배워야 했기 때문에 학문의 기초인 읽기와 쓰기에 능했다. 이런 기본적인 문해 능력을 바탕으로 호기심을 펼칠 수 있었고, 그 결과물인 문서나 책 등이 대량으로 출판될 수 있있다. 

중세 시대의 유럽과 아라비아는 신 중심의 사회였는데, 분위기는 상당히 달랐다. 유럽은 신에만 매몰된 탓에 모든 것이 신 중심이었다. 신 이외의 다른 분야는 발전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그래서 암흑기라고 표현한다. 반면 아라비아는 '코란'이라는 경전을 배우고 익혀야 했기 때문에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공동체의 지식 발전의 원천이 된다. 아라비아 마저 문맹 국가였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산업혁명의 시작은 20세기에나 나오지 않았을까?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문화가 무엇을 보편적인 규범으로 정하는 가에 따라 세상이 엄청 달라지는구나. 한 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이 서로 대립했던 시대를 지나온 우리는, 앞으로 무엇에 의해 시대가 갈라지게 될까? 경제력? 군사력?


법의 안정성

독일의 법철학자 구스타프 라트브루흐는 법의 이념을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에서 찾았는데 그 중 법적 안정성이란 사람들이 법을 믿고 그 안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 법은 쉽게 변경되지 않고 사람들의 의식에 맞아야 하는데 소크라테스는 법적 안정성에 대해 숙고했고 이를 죽음으로 실현했다. 

2020년을 관통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입법 독재"라고 생각한다. 41% 지지를 받은 대통령, 180석을 차지한 여당은 반대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다수를 위한다는 말로 행하는 폭력 앞에서 상식에 반하는 일들을 보자니 가슴이 아팠다. 왜 이리도 답답한지 근본적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한'이라는 정서인가 싶었는데, '법적 안정성'이란 말에 머리가 개운해졌다. 

한편으로 소크라테스는 왜 죽음을 받아들였을까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사실 어렸을 때 접한터라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나보다라고만 생각했었지, 별 고민은 없었다. 하지만 법적 안정성과 연관해서 생각해보니, 감옥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 지 짐작이 간다. 자신의 죽음과 법적 안정성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혁명이란

혁명이 일어나면 '단번에', '새로운 것'의 변화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 사건이 쿠데타인지, 변혁인지, 혁신인지, 개혁인지, 의거인지 등의 의미를 부여하고 판단하는 것은 변화된 세상에 살며 혁명을 역사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몫이다. ... 혁명의 영향으로 변화된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변화의 헤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사건을 혁명이라고 이름 붙여주어야 혁명이 된다. 

잠시나마 촛불시위를 혁명이라고 생각했었다. 할많하않!


남일이 아니야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 조지 오웰(영국 소설가)

책 초반에 나오는 조지 오웰의 말은 책장을 덥으며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생각해 볼 수록 명언이다. 과거를 어떤 과점에서 바라보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방향성이 달라질 것이다. 현재를 지배할 수 있어야 과거를 바라보는 관점을 정의할 수 있다. 1984에서 현재의 상황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과거를 조작했던 것은, 결국 미래를 지배하기 위함 이었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건 결국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지. 소설 속 이야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지금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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