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 (리커버 에디션) - 8점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


왜?

눈뜬 자들의 도시? 그런 영화를 봤었는데? 아, 그건 '눈먼 자들의 도시' 였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던 기억이 났다. '눈뜬 자들의 도시'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쓴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를 재미있게 봤었고, 또 그 이후의 이야기라고 하니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간략한 줄거리

투표 결과 백지투표가 80% 였다. 위정자들은 당황한다. 위정자들은 정부와 공무원들을 도시 바깥으로 이전시키고, 도시를 봉쇄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무정부 상태의 도시는 평온하다. 

위정자들은 도시 스스로 혼란에 빠지지 않자 고의로 테러를 일으킨다. 무고한 희생자만 생겨날 뿐 혼란은 없다. 혼란에 빠져 엉망진창이 된 도시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결국 위정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정부의 음모는 희생자를 찾아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되찾으려고 한다. 4년 전 그 사건 때,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그녀에게 그림자가 드리운다. 


양심선언

도시에는 계엄령이 내려졌다. 정부는 희생자의 범죄 증거를 찾기 위해서 경찰을 파견했다. 파견된 경찰로써 임무를 수행하던 경정은 혼란에 빠졌다. 

죄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무죄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을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결국 경정은 신문사를 찾아가 정부의 음모를 밝힌다. 그리고 진의를 의심하는 신문사 발행인에게 이야기 한다. 

우리가 태어날 때, 이 세상에 들어올 때, 우리는 우리 인생의 나머지 기간 동안 지킬 협정을 맺는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묻게 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누가 내 대신 여기 서명을 했지, 글쎄요, 나는 스스로 그런 질문을 했고, 그 답이 이 편지입니다. 

그렇게 경정은 자신의 남은 인생을 희생한다. 자신의 손으로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킬 수 없기에,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경정과 같은 사람들의 희생과 진실이 묻히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또는 자기 가족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또는 자기 조직의 안위를 위해서 타인의 희생을 가벼이 여겼을 사람들이 스쳐간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양심선언이 도시를 술렁이게 만들어도 위정자들의 의지는 변화가 없다. 그들의 선의는 소수의 불순분자에 의해 조종당하는 도시를 도우려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국민이란 말 속에 뭉뚱그려진 개인은 무고한 희생을 강요 당한다. 누가 그들의 억울함을 위로하고, 해소해 줄 수 있을까? 지금도 소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인 것 같아 씁쓸하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할많하않.


쉼표와 마침표

개 이름이 뭐요. 콘스탄테예요, 하지만 우리와 친구들한테는 눈물을 핥아주는 개죠, 하지만 짧게 부르고 싶을 때는 콘스탄테라고 불렀죠. 왜 눈물을 핥아주는 개요. 사 년 전에 내가 울고 있을 때 이 녀석이 와서 내 눈물을 핥아주었어요. 백색 실명 시절에 말이오. 네, 백색 실명 시절에요, 이 개는 그 비참한 시절에 내가 만난 두 번째 경이였죠, 첫 번째는 눈이 머는 게 의무인 것 같은데도 눈이 멀지 않는 여자였고요, 그다음이 다가와서 그 여자의 눈물을 마신 이 동점심 많은 개였어요. 정말 그런 일이 있었소, 아니면 내가 꿈을 꾸는 것이었을까. 우리가 꿈을 꾸는 것이 실제로 일아나기도 해요, 경정님. 모든 꿈이 다 그렇지는 않았으면 좋겠소. 그렇게 말씀하실 만한 이유가 있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요. 경정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가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문장은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앨버트로스가 와서 부인 눈을 찌르지 않았으면 좋겠소. 

문장이 특이하다. 대부분 쉼표와 마침표로만 구성했다. 가령 두 사람이 대화를 한다면 한 사람의 말은 상대방의 대화가 나오기 전까지 쉼표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구분이 잘 안되기도 했는데, 읽다 보니 머리 속에서 저절로 구분이 된다. 독특한 형식이라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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