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신혼여행


5년 만에 신혼여행 - 10점
장강명 지음/한겨레출판


빠져들었다.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엄청난 몰입은 아니었다. 특별한 사건의 기승전결이 있는 것도 아닌 담담한 글이다. 하지만 읽는 내내 '그래?', '그래서?', '다음은 뭐지?' 라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들었다. 마치 자기는 전혀 웃지도 않으면서 관객은 쉴새 없이 웃게 만드는 코미디언의 공연을 보는 느낌이었다. 


여행 팁을 얻었다. 

여행을 갈 때 들고 가는 책은, 가벼우면서도 진도 안 나가는 물건이 최고다. 글이 너무 재미있고 감동적이면 여행의 감흥이 반감된다. 내가 강력히 추천하는 여행용 서적은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다. 얇은데 정말 더럽게 지루하다. 여행 중에 이 소설을 읽으면 여행의 재미가 틀림없이 배가된다. '내가 어디에 있던 더블린에 있는 것 보다는 낫겠지'하는 마음이 절로 드니까.

여행을 간다고 하면 보통 재미있는 책이나, 동영상을 챙겼다. 지루한 이동 시간을 짧게 만들어주는 마법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작가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여행지에서의 온전한 시간을 방해하는 걸림돌이었을 수도 있었겠네. 나도 다음 번에는 <더블린 사람들>이란 책을 가져가볼까? 아서라! 괜찮은 리조트나 해변가의 선베드에 누워 한가로이 책을 보는게 낙인데, 그 시간이 왠지 우울해질 것 같다. 


유목민과 정착민

그러나 신세계를 찾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직업을 바꾸고, 분기마다 새 취미에 열정적으로 도전하며, 어딘지 모를 이상향을 찾아 쉴 새 없이 떠돌아 다니는 삶이 바람직한 걸까? 그걸 낭만이라고 포장하는 건 시시한 사기 아닐까. 그것은 기실 그 사람의 세계가 그만큼 황량하고 별 볼 일 없음을 폭로할 따름이지 않은가. 어느 정도 날씨가 괜찮고 마실 물과 식량이 있는 평평한 땅을 찾으면 방랑을 멈추는 게 정상이다. 거기에 건물을 짓고 사람을 불러 모아야 한다. 

살아오면서 확신하게 된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의 성향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외향적인 사람도 있고, 내향적인 사람도 있고, 그 둘이 섞여있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는 없지.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특정한 성향을 선호하거나, 다른 성향을 하대하는 분위기 아닐까? 특정 성향의 사람이 다른 성향의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괜스레 과대포장하거나, 애써 의미를 축소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서로 인정하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 되지 않을까. 


허구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

원곡의 멜로디는 편곡자에게 세계의 기초이면서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인 것이다. 

모든 가치는 결국 허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구속과 억압을 통해 겨우 그 허구가 현실 세계에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결혼의 핵심은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지키겠다는 선언에 있었다. 

이것이 허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위적인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면, 인간은 유인원이 된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법인에 대한 설명을 봤던 기억이 났다. 집단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했는데, 허구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것은 저절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이어져 온 사회적 통념이나 가치관이 변화된 세상을 뒤늦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그 간극을 줄이고, 충돌을 최소화하는 것이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부여되는 숙제 아닐까.


반전

읽는 내내 '설마 사실은 아니겠지. 이렇게 적나라하게 본인 이야기를 드러낼 수가 있나? 1인칭 시점이라서 그럴꺼야.'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현실감 넘치게 잘 쓴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말을 보는 순간 잠시 어리둥절했다. 

2016년 8월 현재, 저희 부부는 아직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짧은 보라카이 여행 속에 인생의 희노애락을 꾹꾹 눌러담으며, 풀어놓은 사랑 이야기가 현실 속의 이야기였다니. 기승전결 없는 담백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내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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